본문 바로가기

유래 및 연혁

  • 조선시대 : 조선중기 영천군 산이리, 어화곡리, 말암리 임지리로 구성
  • 1906. 01. 19 : 임지리가 봉화군으로 편입
  • 1914. 04. 01 : 부령 제111호 부군면 폐합으로 산이면, 어화면, 말암면 3개면이 병합 영주군 이산면이 됨
  • 1973. 07. 01 : 대통령령제6542호로 봉화군 상운면 두월리, 내림리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편입
  • 1980. 04. 01 : 법률제3188호 영주읍이 시로 승격됨에따라 조암리가 영주시로 편입
  • 1983. 02. 15 : 행정구역 변경으로 원리일부가 영주시로 편입
  • 1995. 01. 01 : 법률제4774호로 영주시·영풍군이 통합 영주시 이산면으로 개칭

지명유래

이산면 지명유래 내용을 리별, 유래 순으로 정리한 표입니다.
리 별 유 래
원리
  • 돗밤실(栗谷) : 조선세종때 안동 권씨가 어(御)와실(室)에서 이주하였으며 당시 밤나무가 많고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하여 율곡(栗谷)이라 칭함.
  • 한성골(漢城谷) : 漢城左尹을 역임한 鄭道復이 이곳에 와서 살았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동명을 漢城洞이라 하여 지금에 이름.
신암리
  • 삼봉골(三峰谷) : 마을의 지세가 마을을 중심으로 좌,우,후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각봉이 우뚝 솟은 봉우리여서 삼봉골(三峰谷)이라함.
  • 우금(友琴) : 1520년경 漢成府尹을 역임한 金友益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開拓당시 마을의 지형이 앞산 줄기와 뒷산 모형이 거문고를 치는 형상이므로 거문고를 벗으로 삼는다는 뜻에 우금(友琴)이라함.
  • 신기(新基) : 李朝時는 末岩面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미륵당. 새마을. 샛터松谷골을 합하여 신암3리라 함.
지동리
  • 탑골(塔谷) :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玉麗菴이라는 사찰이 있었다 전해지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형적만이 남아 塔谷 이라함 .
  • 일우실(逸遇室) : 조선중엽 全宅弘이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앞에 개울이 흐른다 하여 일후라 칭하기도 하며 全奎炳이 세운 逸遇亭의 停號 洞名되어 칭함.
  • 장수골(長壽谷) : 1580년대 달성 서씨 둔암선생의 후손들이 생활을 避하여 伊溪上葛 田洞에 거주하다가 고을이 협소하여 긴계곡, 평탄한 곳에서 마을을 개척하였다하여 長壽洞이라 함.
석포리
  • 번개(樊溪) : 조선선조 명신 金玏선생의 晩年 은거지로서 영주 동쪽에 흐르는 하천을 배경삼아 東浦라고 칭하다가 그 후손 義禁府都使 번개공이 동천(現乃成川)을 돌려 치수함으로써 계(溪)를 돌렸다 하여 반포라 일컬어지며 또한 선생의 호 번개를 따서 칭하기도 함.
  • 흑석(黑石) : 동리입구에 검은 바위가 있어 黑石마을이라 함.
용상리
  • 배해(舟海) : 약1500년경 최임수라는 선비가 임진왜란을 피해 이마을에서 처음으로 정착하였으며 마을의 형상이 마치 바다위에 떠 있는 배를 닮았다 하여 배주(舟), 바다 해(海)를 써서 「배해(舟海)」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한 마을의 지세가 높은편으로 동에 내성천, 서에 서천이 흘러 동서로 물을 안고 떠있는 배와 같다하여 배해라 칭함.
  • 어위실(御位室) : 박봉산 아래 임금이 정무를 보는 용상골(龍床谷) 있어 가까운 곳에 임금이 살곳이 있어야 한다 하여 마을 이름을 임금 어(御)•누울와(臥)자를 써서 『어와실(御臥室)』 또는 『어위실(御位室)』,『어우실(御宇室)』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천리
  • 내매(乃梅) : 晋州 姜氏 조상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최초로 마을을 개척한 곳으로 梅花落地라 하여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가축은 매화꽃처럼 물위에 떠올랐다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전설이있음.
  • 새해(新海) : 당초 月城 孫氏 선조가 동천면(乃城川) 출천동이라는 동리에 살았으나 수마로 인하여 재를안고 새해로 이주하였으며 새해라 함은 수마를 피해 높은곳에 자리한 동리라 안개가 끼면 마을 아래로 바다와 같이보여 새해라 하며 또, 하나의 전설은 沙海라고하는데 동리에서 내성천을 보면 모래바다를 이룬다하여 칭하여 지기도함.
운문리
  • 귀통골(貴通谷) : 옛날 이곳에 산적이 출몰하여 가산을 도적질해감으로 이를 금지하기 위해 마을의 개울로 귀한손님이 아니면 통과시키지 못하게 한 연유로 貴通谷이라 함.
  • 돌트미 : 옛날 이곳에는 돌이 많이 나와 무더기로 쌓아 놓아 「돌더미」로 불렀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하여 「돌트미」이라 불리게 됨.
두월리
  • 두들 : 이마을은 두메산골이었으나 내성천 연안을낀 넓은 들이 있어 두들이라 칭함.
  • 호매(湖梅) : 옛날에는 마을의 중앙을 흐르는 개울물이 호수처럼 맑고 깊어 매화가 호수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라하여 호매 또는 해맬이라 칭함.
내림리
  • 바같수구리 : 1600년경 영일 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이 마을터가 연화부수(蓮花浮水)라하여 기와집을 짓거나 펌프를 박으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있음. 수구리라 함은 내성천이 이마을을 감돌아 흐른다하여 연유된 동명
  • 안수구리 : 1600년경 반남박씨 문중에서 박승임선생의 묘를 이곳에 모시고 그 후손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