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원정은 금광(金光 : 원래 지명은 금강(錦江)) 마을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면서 마을을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이자 공동체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금광마을 입향조인 사계 장여화(張汝華 ; 1506~1621)가 정자를 건립코자 한석봉에게 현판 글씨를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100년 뒤 후손인 진사 간은(艮隱), 처사 금리(錦里)가 선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심원정을 건립하였으며, 1825년 재건하였다고 한다.
심원(心遠)이란 말은 도연명(陶淵明)의 ‘음시(飮酒)’의 한 구절에 “사람들 사는 틈에 초가집 짓고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心)이 머니(遠) 머무는 땅 또한 자연히 외져서이리.(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라는 글귀에서 유래한다.
심원정에 걸려있는 전계초당(箭溪草堂) 현판은 장여화가 전닷마을에 살던 건물의 당호로 현판 글씨는 조선 중기의 명필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갈필(葛筆 ; 칡뿌리로 쓴 글씨)이라 한다.
심원정이 위치한 금강마을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해 온 인동장씨의 집성촌으로, 내성천이 태극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흘러내리는 이른바 산태극․수태극의 명당으로 낙동강 수계에서는 영주 무섬마을․안동 하회마을․예천 금당실과 더불어 그 명성이 높다.
19세기 초기에 중건된 정자건축물로서 당시의 건축양식과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현판 글씨 또한 그 가치를 지니고 있어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