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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면 명소 부석사
  • 등록일2015-08-27
  • 담당부서체납관리팀
◆ 창건설화◆
부석(浮石) : 무량수전 서편 언덕 아래에 있는 바위 떨기 위에 앉아있는 이 반석은 30명쯤 둘러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
부석사 절 이름을 달고 있는 이돌의 전설이 바로 부석사의 창건 설화입니다.
다음은 송나라 [고승전]에 들어있는 의상의 전기 입니다.
의상의 속성은 박씨이며 계림부의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남다른 데가 있었는데, 성년이 되어 출가하여 산천에 노닐다가 불도에 들었으며 성품은 매우 천연덕스러웠다. 일찌기 법을 구 하러 원효법사와 함께 서유의 길에 올랐으나 당주계에 이르러 폭풍이 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 길가에 토굴속에서 비를 피하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들은 옛 무덤의 해골 사이에 누워 있었다.

하늘은 비로 자욱하고 땅은 질어 이번에는 벽돌굽는 곳에서 밤을 보내는데 채 밤이 깊어지기도 전에 갑자기 귀신들이 괴변을 부렸다. 원효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어젯밤에는 토굴 아닌 무덤에서 잠을 자도 편안했었는데 오늘밤에는 초저녁부터 도깨비굴이 있다 생각하니 탈이 많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가지가지의 일이 생기는도다(일체유심조). 차별하는 생각이 없어지니 토굴이건 무덤이건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삼계가 오직 마음먹기 나름이요. 만법이 오직 생각 탓으로 생기는도다.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는 것을 무엇 때문에 법을 따로 구할 필요가 있 겠는가.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노라’ 하였다. 비록 원효는 되돌아섰 지만 의상은 죽기를 한하고 물러서지 않겠다. 하여 상선을 탔다.

총장 2년에 등주해안에 도착하여 한 신도의 집에 이르자 의상의 생김생김이 뛰어남을 보고 머무르게 하였는데, 얼마 후에 고운 옷을 입고 아름답게 화장을 한 선묘란 처녀가 사랑을 속삭여 왔다. 그러나 마 음이 돌과 같이 굳은 의상을 동하게 할 수 없자 갑자기 도심을 일으켜 그 앞에서 대원을 발하여 말하길 ’세세에 태어나 화상께 귀명하고 대승을 배우고 익혀 대사를 성취하리이다. 제자는 반드시 신도가 되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공급하리이다.’ 하였다. 의상은 그후 곧 장안으로 향해 가서 종남산에 계신 지 엄삼장 밑에서 ’화엄경’을 종합적으로 배웠다. 그때에 강장국사와 함께 공부하였다. 말하자면 극히 미 묘한 도리를 이해하고, 전체의 흐름을 알고 그 행함에 절도가 있고, 요령이 있어 덕의 그릇에 가득찼다고 할 수가 있고, 가히 삼장의 바다에 기꺼이 노닌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귀국날짜를 의논하는 가운데 문등에 있는 신도집에 이르러 수년에 걸친 뒷바라지를 감사하고 상선이 있기를 기다려 어느날 문득 출범을 하게 되었느데, 선묘는 의상에게 드릴 법복과 여러 가지 집 기등을 마련한 함을 가득 채워 해안가로 달려가보니 의상이 탄 배는 이미 멀리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기도를 올려 ’내 본래의 참뜻은 법사를 공양하는 것이다. 원컨대 이 의복을 담은 함이 저 배에 날아들어가라’ 이렇게 외고 거센 파도위로 함을 던졌다. 때 마침 거센 질풍이 불어 새털같이 함을 배로 날려 보냈다. 그녀는 다시 맹세하기를 ’이 몸이 큰 용으로 바뀌어 저 배의 선체와 노를 지키는 날개가 되어 무사히 본국에 돌아가 법을 전할 수 있게 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웃옷을 벗어던지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 원력은 굽힐 수가 없었다. 과연 그 몸매는 요교하여 혹은 약동하고 혹은 굽이치면서 그 배밑을 안전하게 하였다. 의상은 본국에 되돌아온 후 산천을 두루 찾아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나 소도 접근할 수 없는 그러한 곳을 찾아 ’여기야말로 땅이 신령하고 산이 수려하니 참된 법륜을 돌릴 만한 곳이다. 권종이부의 무리들이 오백명씩이나 모여있을 까닭이 무엇이냐’라고 하였다. 의상은 마음속 깊이 대화엄의 가르침은 복되고 선한 곳이 아니면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의상을 항상 따라다니며 지키던 선묘룡은 의상의 생각을 알아 허공중에 대변신을 일으켜 커다란 바위로 변했다. 넓이와 깊이가 일리쯤되는 바위가 되어, 가람의 정상을 덮고 막 떨어질락말락 하니 많은 승려들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상은 절안에 들어 화엄경을 펴기 시작하였다. 겨울에는 햇빛이 있는 낮에, 여름에는 서늘한 저녁에 강설을 하여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국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장전과 노복을 베풀어주었으나, 의상이 아뢰기를 ’내 법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평등히 보고, 신분의 귀하고 천함을 없이하여 한가지로 합니다. 열반경에는 여덟가지 부정한 재물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내 어찌 장전을 소유하고 노복을 소유하겠습니까. 빈도는 법계를 집으로 삼아 발우를 가지고 밭갈이를 하여 익기를 기다립니다. 법신의 헤명, 즉 지혜로운 생명이 이 몸을 빌려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 하였다. 의상의 강설로 심어진 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가 대화를 통해 이룬 숲은 열매를 맺었다. 의상은 설한 바와 같이 행함을 귀히 여겨 강설하는 일 외에 수련을 부지 런히 하였다. 세계와 국토를 장엄하여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일이 없었고, 항상 온화하고 서늘하 였다. 늘 의정스님의 더러움을 씻는 법을 좇아 실행하여 어떤 종류의 수건도 쓰지를 않았으며, 시간이 되어 마르도록 내 버려 두었다. 또 의복과 병과 발우의 세가지 것 외에 아무것도 몸에 간직하지를 않았다. 대개 제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서두르지 않고 그 조용히 가라앉는 때를 기다린 후에 계발해주었다. 의문 나는 점을 술술 풀어서 조금도 찌꺼기가 남지 않게 하였다. 이때 이래로 정처없이 구름처럼 떠다니며 그 마음에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머물렀다.


■  교통
승용차 
서울 ~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 I.C ~ 영동고속도로 ~ 남원주 I.C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부석사【소요시간 : 서울에서 3시간】 
부산 ~ 경부(구마)고속도로 ~ 대구 ~ 중앙고속도로 ~ 풍기 I.C ~ 풍기 ~ 부석사)【소요시간 : 대구에서 2시간】 
기차 
중앙선 상행 : 부산 ~ 영주(1일 3회), 대구 ~ 영주 ~ 풍기 (1일 8회) 
중앙선 하행 : 청량리 ~ 단양 ~ 풍기(1일 10회) 
버스 
서울 ~ 영주 : 동서울터미널(1일 30회) 
대구 ~ 영주 : 북부시외버스정류소(1일 30회),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1일 21회) 
시내버스 
풍기 → 부석사 : 소요시간 20분(1일 15회) 
영주 → 부석사 : 소요시간 40분(1일 15회) 

■  숙박
코리아나 호텔(054-633-4445) 
※그외 풍기읍내, 영주시내의 다수 여관 있음 

■  음식
자미가(054-632-3454) 
장미식당(054-633-3295) 
부석사식당(054-633-3317) 
종점식당(054-633-3606) 
명성식당(054-633-3262) 
가든 미가(054-633-7415) 
무량수식당(054-634-6770~1) 
※ 그외 부석면 소재지, 풍기읍내, 영주시내 각종 음식점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