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관광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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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갈구하는 암수 한쌍의 기기묘묘한 금계바위 이미지
사랑을 갈구하는 암수 한쌍의 기기묘묘한 금계바위
  •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백두대간 중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소백산천문관측소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산줄기 동사면에 있다. 곰넘기재와 금계호 사이에 해당한다. 금계바위 동쪽 골짜기는 십승지의 하나인 감록촌(監錄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감록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감록(鄭監錄)에 기록된 피난지는 '풍기의 차암과 금계천' 두 물골 사이로 임실·장선·부계밭·갓밭·용천동·쇠바리 일대이다. 이곳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한 중심지, 즉 피난적지로 알려져 정감록 신봉자들이 처음에 정착 했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국론도 금계바위가 수탉의 벼슬을 닮은 바위의 형상에서 유래 하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바위의 모양은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바위는 한자로 표기해서 금계암(金鷄岩)이라고도 한다. 지명이 바위의 형태와 관련되어 있음은 금계 바위에서 닭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있던 보석을 빼려고 하다가 바위에 깔려 죽은 나그네의 전설에 서도 엿볼 수 있다. 금계리·금계천·금계호는 관련 지명이다 영주시 풍기읍에서 얼마쯤 가면 아담한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지금은 삼가동(三街洞) 이라 하나 옛날에는 금계동(金鷄洞)이라고 불렀다. 이 곳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10승지지(十勝之地)로 100여년 전부터 많은 피난민들이 살고 있으며 앞으로 세계대전이 발생하면 이곳에서 인간의 씨를 구할 수 있다고 신앙화(信仰化)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풍기읍과 그 일대에는 이북 출신의 많은 피난민들이 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마을 뒷산에는 닭의 모양과 비슷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가리켜 "닭산"즉 [금계바위]라 부른다. 옛날 이 바위의 가운데 부분에는 많은 금이 묻혀 있었다고 하며 또한 닭의 눈이 되는 부분에는 두 개의 빛나는 보석이 박혀 이 마을을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동네의 수호신으로 믿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곳을 지나던 어떤 나그네가 이 바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일확천금을 노리고 가파른 절벽을 간신히 기어 올라가 금계암에 박힌 보석을 빼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덮히기 시작하며 캄캄한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이 벼락으로 인하여 바위 일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그 나그네는 바위에 깔려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그네가 빼려고 한 보석은 묻혔는지 간 곳이 없었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에 이 마을은 차차 가난해지기 시작하고 사람이 살기가 어려워졌다. 일제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없어진 보석을 캐내려고 이 마을에 많이 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바위의 형태도 닭처럼 보이지도 않은데, 다만 그 당시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많은 수정조각들이 금계암 부근에 흩어져 있어 해질 무렵이면 낙조에 반사되어 절경을 이루며 가끔 여행객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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