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관광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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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한 생가
  •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구구1리 (풍기성당)
홍유한(영주 2년, 1727∼정조 9년, 1785)은 자는 사량(士良), 아호는 농은. 창보의 아들, 효자 중명(重明)의 손자다.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사생의 딸이다. 16세에 실학의 거장 성호 이익 문하에 나갔고, 그의 고족제자였다. 그로부터 20년을 탐구에 정진하여 학문을 이루었으며 동문인 순암 안정복, 소낭 윤동규, 정산 이병휴 등 학자들과 학문으로 사귀며, 출세의 뜻을 끊고 진리탐구에 전심했다. 영주 32년(1756) 시국이 불안(사도세자 문제)해지자 서울 집을 팔아 예산 여촌에 옮겨 살았다. 영조 51년(1775) 영남 땅으로 내려와 순흥 동쪽 구고에 터전을 잡으니 '배나무실'이다. 배나무실에 터전을 열자, 영남 여러 고을에서 그를 찾아오는 인사들이 매우 많았다. 그는 고문을 잘하고 시에 능했으나 영남으로 옮기고는 글짓기를 안 했다고 한다. 그래도 남긴 글이 많았는데 모두 없어지고 시문 약간이 전한다. 그의 유고에는 세로의 함난함을 경계하는 뜻으로 읊은 시들이 보인다. 그는 4절 16면이나 되는 긴 유훈을 자손에게 남겼다. 홍유한은 천주교 관계 서적을 읽고 깊이 교리를 이해 실천한 독실한 학자다. 그 집에 전하는 기록에는 천주교의 내용이 없다. 홍유한은 한국인 최초로 세례(1784년)를 받은 이숭훈(1756년, 영조 32∼1801년, 순조 1)이나 한국 최초의 신부 사제 서품(1845년)을 받은 김대건(1821∼1846)보다도 앞서서 천주교의 역사상의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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