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관광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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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서원 이미지
오계서원
  •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오계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학문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여러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사림의 공론으로 현종 6년(1665) 10월 2일에 도재사(道存祠)를 건립(建立)하고 간재 선생(艮齋 先生)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한 후 1692년 迂溪書院으로 昇格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書院이 浸水 被害가 있자 1711년(肅宗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경종 4년(1724)에 그의 장자인 선오당(善迂堂) 이시(李蒔, 1569~1636)를 배향하였다. 고종 8년(1871-신미)에 훼철(毁撤)되었다가 무오년(1978)에 복향하였다. 서원내에는 사당인 도존사(道存祠)와 강당인 명륜당(明倫堂), 동재인 관성재(觀省齋), 서재인 험위료(驗爲僚), 정문인 입도문(入道門)이 있고, 서원밖에는 군자정(君子亭)과 관리사가 있으며, 서원입구 양쪽 언덕에 연어대(鳶漁臺)와 활발대(活潑臺)가 있다. 간재 이덕홍의 본관은 영천(永川)이고, 자는 굉중(宏仲)이다. 영춘현감을 역임하였고 임란시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성호종일등공신(聖扈從一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퇴계의 수제자로 학문이 뛰어나 퇴계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서책을 간재에게 맡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퇴계의 명으로 선기옥형(璇璣玉衡-渾天儀)을 제작하여 천리연구에 활용하였으며, 임진왜란시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는 귀갑선도(龜甲船圖-거북선 설계도)가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거북선 원형 설계도이다. 주역과 심학(心學)에 능하여 퇴계학의 종지(宗旨)를 집대성하였으며, 저서로는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 「간재집」등이 있다. 선오당 이시의 자는 중립(中立)이고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재주가 뛰어나 14세에 이미 경서를 읽었으며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오계서당을 개설하여 성학을 연마하며 제자를 길렀는데 제자 93명중 향시에 10명 문과에 5명이 급제하엿다. 「오계서당 강회록」에 의하면 12회의 강회를 열어 당시 이름난 석학232명이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조 33년(1757)에 통훈대부 사복시정(通訓大夫 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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