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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옛길

아주 오랜 옛날, 누군가가 지나간 자취를 따라 죽령옛길

2천 년 역사를 품은 길로 들어선다. 아주 오랜 옛날, 누군가와 지나간 자취를 따라 자연의 호흡을 느끼며 걷는 이 길, 바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죽령 고갯길이다.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96m의 죽령은 역사서에 고갯길의 개척자와 시기가 명확히 기록된 아마도 유일무이한 옛 고갯길이다.

예부터 죽령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더불어 영남권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영남 3대 관문으로,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 (서기 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 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 이 죽령 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전해지는 오랜 역사의 옛길이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 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엎치락뒤치락 불꽃 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居柒夫)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주·안동·예천·봉화 등 경북 동북부지역에 살던 백성과 관원,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던 선비들, 보부상 등이 주로 이용했다. 고개가 험준하고 마을과 떨어져 있어 나그네의 괴나리봇짐과 보부상들의 짐을 노리던 산적 떼가 들끓던 곳이라 고갯길 초입에는 주막들이 늘어서 사시사철 번잡했다고 전해온다.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던 선비와 보부상 재현

이처럼 장장 2천 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 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죽령(竹嶺) 옛길은 한때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끊겨 수십 년 동안 숲과 덩굴에 묻혀 있었다.

더는 지나가는 이 없이 역사의 애환을 간직한 채 2천년 가까운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갔던 이 길은 1999년 영주시가 영남 내륙을 이어온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정도(2.5km)걸리는 길을 복원하면서 다시금 세상에 알려졌다. 영주시가 소백산 역에서 죽령주막에 이르는 2.5km를 복원한 옛길은 2007년에 명승 제3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의 죽령 옛길은 역사와 전설이 어린 옛 고갯길 일부를 복원한 자연생태로, 풍기온천 앞에 있는 옛 찰방역이 출발점이다. 죽령옛길을 품은 숲은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덕분에 식생이 다양하다. 산나무,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등 온갖 수목과 개별꽃, 피나물, 애기똥풀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죽령옛길을 찾은 누구라도 자연 그대로의 숲으로 반긴다. 이곳을 찾아 그 옛날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과, 그 길을 따라 흐르는 청명한 계곡, 길게 늘어져 있는 수목 터널 주변에 펼쳐진 소백산의 푸른 능선을 마음에 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