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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1동 지명유래

영주1동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나타내는 표입니다.
지명 유래
영주
(榮州)
영주의 중심지인 영주초등학교 · 제일교회 · 영광중학교 · 중앙시장 · 영주시농협 · 분수대 · 국민은행 · 구성공원 · 상공회의소 · 강변아파트 · 영일초등학교 · 여성복지회관 · 서천교까지 이어지는 넓은 지역이 있는데, 이곳을 『영주동(洞)』이라 불러오고 있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이 배출된 고향이나 외향(外鄕)에 대하여 고을의 격을 승격시키는 제도가 있었는데, 고종 36년(1259년)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을평정하여 정방(政房)을 궁궐로 옮겨 왕정을 복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우리고장 출신인 김인준(金仁俊)을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책봉하고 그의 고향순안順安(옛 영주)을 주州로 승격시키면서 영주(榮州)로 바뀌었다.
그 후, 조선 태종 13년(1413년) 영주(榮州)를 영천(榮川)으로 개칭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군 · 풍기군 · 순흥군이 합쳐 영주군이 되면서 옛 지명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철탄산
(鐵呑山)
영주초등학교와 영주여자고등학교 뒤편에 영주의 진산(鎭山)이라 일컫는 해발 276m의 우람한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을 『철탄산』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산줄기 형상이 마치 남쪽을 향하여 달리는 말(馬)의 형상으로 쇠를 삼키는 힘찬 말과 같다고 하여 무쇠 철(鐵) · 삼킬 탄呑자를 써서 『철탄(鐵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사골
(神社谷)
영주시의회 오른편 골목길을 따라 약 200m 쯤 가면 영주초등학교 뒤편 철탄산 기슭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신사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935년 9월 새로 부임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오(남차랑南次郞)가 우리민족의 황민화皇民化를 강요하면서 각 군마다 신사를 만들어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인 아마데라스오오미가미(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셔놓고 매일 아침 참배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이 마을 아래편 영주초등학교 교실 옆에 영주의 신사(神社)가 있었다. 8·15 광복 후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찾아 집을 지어살게 되면서, 옛날 신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신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낙운정
(洛雲亭)
신사골 입구에 김해김씨 일족이 1925년 7월에 건립한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를 『낙운정』이라 불러오고 있다.
페이지 담당자영주1동 김정연 ( 054-639-7843 ) 페이지 수정일 : 2018-08-01 만족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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