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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면 지명유래

이표는 장수면 리별에 따른 지명유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리별 유래
반구리 약 500년전 경주 최씨가 이마을을 개척 하였다고 하는데 마을안에 의성 김씨 선산의 터가 연화부수(漣花浮水)의 반(盤)과 같다고 해서 반두들이라 불러오다가 반구(盤邱)라 부르게 되었다.
두전리 약 300년전에 단양우씨(丹陽禹氏) 우정옥(禹正玉)이란 선비가 개척을 했으며, 양편 산세가 위로 기울어 있다고 해서 盤山이라고 부르다가 반짐이로 부르게 되었다.
갈산리 이마을은 경주 이씨인 성오당(省吾堂) 이계립 선생의 후예(後裔)가 하갈(下葛)에서 살다가 수해를 당하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하갈보다 위쪽에 위치한 곳이라 해서 윗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파지리 약 400년전에 안동권씨가 개척한 마을인데 옛날 마을뒷산 바위에 선녀가 가마를 타고 내려와서 이 바위 위에서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그 바위를 가마바위라고 불렀다고 하며, 바위밑에 마을이 이루어 졌따고 해서 바우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곡리 이 마을 뒷산을 주마산이라 부른다, 이 산은 옛날 어떤 도사가 달리는 말을 소리쳐서 세웠는데 달리던 말이 그대로 큰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마산(走馬山)이라 부르고 이 마을을 달리는 말의 배에 두른 띠 부분에 위치한다 하여 배태라고 불러 왔다고 하며, 현재는 성곡리라고 부르고 있다.
화기리 고려시대에 具氏가 개척 하였는데 그후 민씨(閔氏)가 살았으나, 조선조 세조때 장말손(張末孫)의 현손(玄孫)인 대호군(大護軍) 언상(彦祥)씨(氏)가 380년전 문경군 산북면 내화에서 이주하여 마을 이름을 화계(花溪)라 불렀다. 화기(花岐)란 뜻은 화계의 화자와 이마을 뒷산인 기산의 기자를 따서 부르게 된 것이다. 연복군(延福君) 6대조인 장 계(張 桂)의 고려홍비(高麗紅碑)가 1972년 보물제 501호로 지정되어 있고 연복군 장말손의 영정이 제502호로, 적(敵)가 공신교서(功臣敎書)가 제604호로 지정되어 있음.
소룡리 약 400년전에 송시웅의 외조부인 권호문(權好文)이란 선비가 자기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호문이라 불러 오다가 호고촌(好古村)이라고 고쳐 불렀는데 다시 호구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문리 약 400년전 조선조 선조때 감천대산(甘泉大山)이란 곳에서 손시황(孫是愰)이란 분이 이 마을로 이주하여 산을 살펴보니 둘레의 산세가 마치 곰 모양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웅곡(熊谷) 곰실로 부르고 있다.
페이지 담당자장수면 김민지 ( 054-639-7533 ) 페이지 수정일 : 2018-08-01 만족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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