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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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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풍기읍 수철리에 소재하고 있는 소백산은 열여덟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우리 민족의 영산이다. 낙동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굽이굽이 골짜기마다 천연의 자연이 살아있고 우아하고 장중한 능선은 병풍처럼 펼쳐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는 산이다.

소백산 죽령

백두대간의 기상과 어머니 품과 같이 아늑한 산줄기, 수많은 동·식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소백산은 태백산에서 서남으로 갈린 산맥이 구름 위에 솟아 경상도·강원도·충청도 3도의 경계를 지으면서 서남쪽으로 백여리를 뻗어내려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기상의 영기 어린 성산이자 또한 지맥의 흐름으로는 한반도의 척추 부분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소백산 허리를 감돌아 오르는 아흔아홉 굽이의 죽령은 영남의 3대 관문 중 하나로서, 그 옛날 과거길 선비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이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던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해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하기도 했고 그 40년 뒤인 영양양 1년(서기 590년)고구려 명장 온달 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살펴보면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한 하다.

소백산 야생화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 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장장 2천 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죽령은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수십 년 숲 덩굴에 묻혀 있었지만 옛 자치를 되살려 보존하는 뜻에서 공공근로사업으로 다시 열었고 죽령 옛길 안내판(희방사역 및 죽령고개 2개)과 전설안내판(옛길 요소요소에 5개)을 설치하여 쉽게 찾을 수 있게 해놓아 가족 단위의 새로운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눈덮힌 소백산 설경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1,439m)에는 천연기념물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 고장 선비들이 한양의 궁궐을 향해 임금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였다는 국망봉(1,421m)과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1,394m), 그 옛날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솔봉(1,315m)등 많은 산봉우리가 연이어져 있으며, 소백산 중턱에는 신라 시대 고찰 희방사와 비로사가 있고, 희방사 입구에는 영남 제일의 희방폭포(28m)가 사계절 내내 시원한 물줄기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비로봉 가는길

1년 6개월 정도는 흰 눈으로 온통 덮여 있는 비로봉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기도 한다. 수많은 영봉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 주는 소백산은 소백이라는 이름 때문에 작은 산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웅장한 산이다. 주봉인 비로봉은 수많은 야생화의 보고로 희귀식물인 왜솜다리(에델바이스)가 자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봄이면 철쭉이 만개하여 그 은은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천연기념물 제244호인 주목군락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어 그 고고한 자태와 함께 능선의 부드러운 멋, 우아한 곡선미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배경을 간직해 사랑받고 있는 산이다.

  • 페이지담당자 전현숙 (새마을관광과)
  • 담당전화054-639-6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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