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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소백산 촌부
  • 등록일2020-09-14
  • 작성자 민종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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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소백산 촌부

내 친구는 소백산 촌부였습니다.
그가 소백산 기슭의 자기 집에서 새벽에 일찍 잠 깨어 팔 베개하고 내 귀에 불어 넣어준 
소백산스러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암탉 십여 마리를 거느리던 수탉은 새벽마다 닭잦추던 위엄은 온데간데 없고, 암탉을 우악스럽게 겁박하던 힘찬 몸짓도 짜부라지고 담벼락 구석에 대가리를 처박고 빌빌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병든 닭 새끼였다.
이, 삼일 전부터 꼬꼬꼬꼭 왕성하던 모이 활동도 거른 체 시들한 병색이 완연했다.
탈났네!
많이 아픈가 보네.
툇마루에서 이 녀석을 유심히 살피던 소백산 촌부는 군계일학에 버금갈만한 이 놈이 어디가 심히 
아파 보이는 모습에 상심이 커졌다.
그렇다고 냉큼 잡아먹을 수도 없다.
이 놈은 가정 경제를 돕고 있던 1기통 엔진과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놈은 기골이 장대하여 씨를 더 받을 필요가 있었다.
암탉이 무수하여, 꼬꼬댁 꼬꼬댁, 순흥댁, 풍기댁, 안정댁, 영주댁 하며 서로 내가 잘 났어 소리를
빽, 빽 질러도 수탉이 없으면 헛일이여. 
창조가 안 되는걸……
이 놈이 어디가 아픈지 이판사판으로 내 친히 살펴 봐야겠다.
놈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기민하게 두 다리와 두 날개를 결박했다.
대가리에 두건을 씌웠다.
네가 뽐내는 벼슬의 권위와 육체의 자유를 잠시 박탈하겠다.
대가리에 두건을 씌우면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저항력은 폭발하다가 곧 반감된다.
목표는 모이 주머니를 여는 대수술이다.
닭은 만병의 근원이 그곳이다.
이제 나는 잠시 촌부의 본업에서 벗어나 전대미문의 닭 외과 의사의 길을 가련다. 
외과는 상한 곳을 도려내는 게 전문이렸다!
닭의 모이 주머니를 수술했다라는 소리는 내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다 
하여, 금번 거사에 앞서 탁상 집도를 수 회 더듬더듬 훈련해 보았다. 
매뉴얼도 없고 정밀 장비도 없는 야전에서는 더듬적 접근법이야말로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모이 주머니 해부 지식의 전부이다.
수탉의 운명은 보장할 수가 없다.
우선, 놈의 모래 주머니 부근의 깃털을 가위로 잘라냈다.
절차에 따라 -늘 그것이 필요하다- 열게 될 살갗 주변에 머큐롬을 듬뿍 발랐다.
문구용 연필깎이 외 날 칼이 유일한 수술 도구이기도 하다. 불에 달구어 소독을 미리 해 두었다.
생 살갗을 예리하게 절개하자 놈은 몸서리를 쳤다.
이내 모이 주머니가 눈에 들어 왔다.
간호 조무사 자격을 임시로 부여 받은 아내는 얼굴을 돌린 채 바들바들 떨면서 손으로 놈을 
억압하고 있었다.
극히 조심스럽게 모이 주머니도 부분 절개를 시도했다.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명주실에 매달린 바늘이 그 안에 있었다.
무식한 닭 놈은 암탉들에게 능력을 드러내 보이려고 기다란 명주실을 콕콕 콕콕 쪼아 먹다가 
결국에는 진퇴양난으로 그 끝에 달린 반짝이는 바늘까지 꿀꺽 삼켰음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그게 어떻게 목을 타고 넘어 갔을까!
바늘 니는 모이 주머니 한 쪽 벽을 이미 파 들어가고 있었다.
뱃속을 찌르는 통증은 이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기백이 넘치던 지아비는 주저앉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측은하다. 
조심스럽게 바늘을 제거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 한 조각도 꺼냈다.
봉합 수술은 역순으로 해 나갈 것이다.
수술용 실은 애당초 없었다.
자수용 활 바늘과 명주 실로 모이주머니를 조심스럽게 꿰맸다.
겉 살갗도 무지막지한 외과 방식으로 봉합을 마무리 했다.
꿰맨 부위에 다시 머큐롬을 듬뿍 발라 주었다.
돌팔이 외과의는 수술이 근자에 보기 드물게 성공적이었다라고 자평 하였으나, 그 아내는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짓은 못 된다 라며 머리를 흔들었고, 환자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쭉 뻗은 상태가 되었다. 
그 와중에 암탉들은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들 수 없노라며 꼬~옥 꼬~옥 목을 매며 신랑을 찾아 
마당을 쓸고 다녔다.
아기 헌 기저귀로 압박 붕대를 만들었다. 수술 부위를 잘 감싸 주고 나지막한 둥지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다
살고 죽는 것은 너의 신께서 결정하시리라!
그리고 너 주인 잘 만난 줄 알아라.
잡아 먹히지 않고, 몇 날이라도 수명이 연장됨을 감사하라.

수술 이튿날, 셋째 날은 전혀 기척이 없었다.
넷째 날 기적이 일어났다.
수탉의 강인한 생명력을 기이한 눈으로 보고 입이 떡 찢어졌다. 
“나는 소백산 장닭이다!” 외치는 듯했다. 
녀석은 닭장 밖으로 비록 고단한 옥체지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덟 째 날이 되자 놈은 암탉들을 거느리고 제국의 군주처럼 식민지를 순회하며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산촌 사람들의 얘기가 대게 그러하듯이 그의 수술사도 Happy Ending으로 여기서 끝이 났다. 
뭘 기대 하고 싶은 겐가!

개코 같은 이야길세. 그걸 믿으라고……!

소백산 촌부, 그 친구는 그리운 소백산 어딘가 있을 겁니다.
페이지 담당자문화예술과 김도훈 ( 054-639-6562 ) 페이지 수정일 : 2023-08-16 만족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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